신문 지면에 실린 사진은 북한 선전 이미지의 전형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참석자 개인이나 가족의 시선에서 보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신문 일부 지면에 여백과 함께 실린 이 사진에서, 자신의 얼굴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일성 시대에는 기념사진이라고 해야 기껏 수십 명, 김정일 시대에는 최대 몇 백 명 정도로 인원을 제한해 연단에 서게 함으로써 함께 역사 만들기에 나선 사람들을 기록으로 남게 해줬습니다.
● “또 기념사진이네”라는 감각
집단 기념사진은 원래 ‘증명’의 장치였습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을양산출장샵 시각적으로 남기는 방식이었습니다. 북한에서 1호가 등장하는 사진이 특별한 의미를 가져온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현지지도나 정치 이벤트가 끝난 뒤 촬영된 기념사진은 각 가정에 전달됐고, 액자에 넣어 집 안에 걸렸습문경출장샵니다. 기념사진은 국가가 개인에게 남기는 흔적이었고, 가문의 영광이자 가보였습니다. 이 관행은 1970년대 이후 반세기 넘게 이어져 왔습니다.
김정은 시대 역시 기념사진은 북한 사진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였습니다. 제가 정리한 통계에 따르면 이 흐름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김정은은 집권 직후 1년 6개월(2012년 1월~2013년 5월) 동안 175장의 단체 기념사진을 통해 약 12만 명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2012년 7월 26일자 노동신문에는 6개 면에 걸쳐 28장의 기념사진이 실리기도 했습니다. 새롭게 등장한 권력의 존재를 빠르게 시각화하기 위한 김정은식 해법이었을 것입니다.
같은 속도로 기념사진 촬영이 이어졌다고 가정하면, 단순 누적으로 계산해 집권 14년 동안 기념사진에 등장한 인원은 약 100만 명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를 4인 가족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400만 명으로, 전체 650만 가구 가운데 상당수가 한 차례 이상 기념사진 경험을 공유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북한 내부에서 ‘김정은과 함께 찍은 사진’이 더 이상 예외적인 경험이 아니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최근 1~2년 사이, 김정은 집권 초기 북한 이미지 정치의 핵심이었던 집단 기념사진의 위상과 빈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최소한 노동신문 지면에서는 기념사진이 더 이상 주류가 아닙니다. 김정은 권력 초창기에 전체 사진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던 위상과 비교하면 분명한 변화입니다. 물론 김정은이 2022년 열병식에 참가한 군인 전원을 다시 평양으로 불러들여, 1주일 동안 20여 차례에 걸쳐 기념사진을 찍고 이를 노동신문에 게재하는 등 ‘사랑의 기념사진’ 정치를 이어가고 있다는 반론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최근 급격히 늘어난 대규모 군중 동원형 ‘1호 행사’의 빈도를 함께 고려하면, 집단 기념사진의 위상 변화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 북한 내부에도 생겼을 ‘사진 피로감’
왜 이런 변화가 생기고 있는 것일까요. 한 가지 가능성은, 김정은을 포함한 북한 내부의 독자들 역시 이런 형태의 사진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요즘 북한 관련 뉴스와 콘텐츠는 예전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합니다. 한때는 ‘북한’이라는 단어만 들어가도 클릭이 보장되던 시기가 있었지만, 이제는 외부의 우리에게도 북한 이미지는 어느 정도 익숙한 풍경이 됐습니다. 반복되는 미사일, 행사, 열병식 사진 속에서 독자가 느끼는 것은 놀라움이 아니라 “또 저 패턴이구나” 하는 인상에 가깝습니다.
![2026년 1월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서 한 시민이 노동신문을 보고 있다. 노동신문은 ‘일반자료’로 전환돼 통일부 북한자료센터 등 전국 도서관에서 별도의 절차없이 볼수 있다.[서울=뉴시스]](https://imgnews.pstatic.net/image/020/2026/01/31/0003693937_002_20260131131312715.jpg?type=w860)